LG 생명과학 출신 임원
1980년부터 아시아 최대 규모
바이오벤처 창업자 30명·교수 170명
최근 투자 한파로 움츠러들었던 국내 바이오산업이 기술력을 바탕으로 다국적 제약사와의 기술이전 계약을 끌어내면서 바이오 강국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이 가운데 바이오산업 ‘임원 사관 학교’라 불리는 기업이 있다. 이는 바이오벤처 창업자 30명과 교수 170여 명을 배출해 낸 LG생명과학(現 LG 화학) 이다.
LG화학은 업계에서 ‘대한민국 바이오 사관학교’로 통한다. 이는 LG화학의 연구소가 1980년대부터 아시아 최대 규모였고, 당시 최고 인재였던 석박사 연구원들이 독립하면서 K 제약·바이오 산업을 키웠기 때문이다.
특히 유망한 신약후보물질 발굴과 임상시험, 상업화 단계까지 국내 생태계 전반에 LG 출신 전문가들이 두루 포진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굵직한 글로벌 제약사들이 잇달아 K-바이오산업에 러브콜을 보내는 것 역시 LG화학 출신들의 공로로 평가받는다.
업계에 따르면 조 단위 기술이전 계약을 끌어낸 박순재 알테오젠 대표와 김용주 리가 켐바이오 사이언스 대표, 비상장회사인 이승주 오름테라퓨틱 대표가 모두 LG 출신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기업공개(IPO)를 준비 중인 온코닉테라퓨틱스와 제노스코 등 LG 출신이 창업한 비상장사 바이오벤처는 20여 곳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매일경제의 보도에 따르면 LG생명과학 기술연구소 출신들이 세운 국내 바이오벤처 가운데 코스닥에 상장한 기업 12곳의 시가총액은 지난달 27일 기준 21조 원을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2018년 2조 원을 넘어선 후 6년 만에 기업가치가 10배 이상 증가한 수준이다.
여기에 이들 기업이 최근 6년간 글로벌 제약사를 상대로 체결한 기술수출 계약 규모는 최소 15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LG생명과학 연구원 출신으로 지난 2015년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를 창업한 이정규 대표는 “LG생명과학은 1980년대 초반부터 바이오 분야를 연구했기 때문에 출신 연구원들이 상담한다”며 “벤처 창업에 나선 선배들의 모습을 보고 후배들도 꿈을 키우면서 많은 바이오벤처가 탄생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LG 화학 출신 연구원은 신약 개발에 전문성을 쌓은 박사들이 많아 바이오기업의 많은 형태 중에서도 신약을 직접 개발하는 기업이 많은 편에 속한다. 이들은 신약 직접 개발에 그치지 않고 꾸준한 교류를 통해 국내 바이오기업이 위기를 돌파하고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는 토양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인적 교류와 R&D 구상, 사업 협력을 넘어 자금 유통으로도 영향력을 확대한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투자 시장이 얼어붙어 바이오기업이 자금난에 흔들리자, 리가 켐바이오 사이언스와 알테오젠, 펩트론, 수젠텍 등 1세대 바이오기업 대표들은 국내 바이오기업이 대상인 공동 펀드를 조성하기 위한 준비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바이오기업이 줄줄이 사업을 접으면 그동안 일군 국내 바이오산업 생태계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 시작된 것이다. 더하여 이들은 과거와같이 개별 신약의 임상에 목을 매기보다는 이미 개발된 의약품에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에 주목하고 있다.
즉, 글로벌 블록버스터 의약품을 개발한 다국적 제약사들이 서로 경쟁하면서까지 K바이오 플랫폼 기술을 도입하는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이에 대해 벤처캐피털 업계 전문가는 “과거에는 대부분 바이오벤처가 한두 가지 후보물질만 가지고 임상 성공 가능성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유상증자나 전환사채(CB) 등 각종 자금 조달 수단을 총동원했다”며 “이후 임상 실패로 주가가 폭락하면 용법을 살짝 바꿔서 다시 임상에 들어가고 다시 자금 조달을 하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고 평가했다.
한편, 지난달 29일 열린 ‘LG생명과학 OB 모임’에 참여한 박세진 리가 켐바이오 사이언스 사장은 “우리의 영원한 보스, 고(故) 최남석 박사님이 유독 생각나는 날입니다.”라며 포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최고의 인재를 모으고, 전폭적으로 투자하되, 연구에 전념할 수 있게 해주면 된다는 게 그분의 지론이었죠. 오늘날 대한민국 제약·바이오 산업이 이만큼 성장한 것은 최 소장님 덕분입니다.”라고 전했다.
이는 故 최남석 박사를 회상하며 전한 말이다. 박세진 사장의 발언에 100여 명의 참석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인을 추모했다. 업계에 따르면 이날 모인 LG 화학 출신 인물들은 ‘친정’인 LG화학이 잘되길 바란다는 덕담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최남석 소장과 연구개발을 이끈 이병건 지아이이노베이션 대표는 “OB들이 제약·바이오 전반에 포진해 있기 때문에 언제든 함께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친정이 잘돼야 우리도 잘되는 것 아니겠나. LG 출신이라면 누구나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밝혔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