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진그룹 윤석금 회장
국내 최초 렌탈사업
무리한 사업 확장 몰락
영업사원으로 시작해 재계 30위에 오르는 기업을 만들어 ‘세일즈맨 신화’의 전설로 불리는 인물이 있다. 실제로 타 재벌들과 달리 일가 친인척의 도움으로 기업을 영위해 나가는 것이 아닌 온전한 본인의 힘으로 30대 그룹을 만든 샐러리맨 신화의 정석 웅진그룹 윤석금 회장이다. 한때 매출 6조 원을 자랑했던 웅진그룹의 창업주는 어떻게 지낼까?
윤석금 회장은 지난 1971년 건국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이후 한국브리태니커회사(주)에 입사하여 출판인으로서의 첫 행보를 시작하게 된다. 당시 그는 백과사전 세일즈맨으로 열심히 일하며 뛰어난 영업실적으로 한창기 대표이사의 눈에 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창기 이사는 출판업계의 전설로 불리는 ‘뿌리 깊은 나무’ 잡지의 창간인이자 언론인으로 알려졌다. 당시 한창기 이사가 인정한 영업실적을 보인 윤석금 회장은 승진을 거듭해 사업국 상무 자리에 올랐으나 갑작스럽게 퇴사를 결정한 뒤 도서 출판 헤임인터내셔널을 세우고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 초기 윤석금 회장은 동명의 일본회사로부터 영어 교재를 수입하다가 1981년 웅진 최초의 자체 교재 헤임고교학습을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부터 1년 뒤 1982년 편집개발부를 발족하고 출판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1983년 웅진그룹의 모태가 되는 웅진출판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아동도서 출판업계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어 동일산업을 인수한 뒤 이를 웅진식품으로 바꿔 ‘정신문화에서 생활 문화까지’라는 모토를 만들 기초를 당시 형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웅진그룹의 주력 사업 중 하나로 꼽히는 한국 코웨이를 세우며 정수기 렌탈시장에 뛰어들게 된다. 세일즈맨 신화를 기록한 윤석금 회장의 사업 면모는 한국 코웨이의 방문판매 전략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1989년 한국 코웨이의 출범 이후 윤석금 회장은 정수기 업계 부동의 1위로 올라서며 1990년 웅진그룹의 체계를 갖추게 된다. 재계에서는 단기간에 그룹의 외형을 성장시킨 윤석금 회장을 두고 ‘샐러리맨 신화로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라고 평가했다. 웅진그룹은 거듭되는 사업 구조 변화를 통해 출판, 식품, 정수기 사업을 축으로 안정적인 경영 기반을 다져 나갔다.
이에 2000년대 중반부터 사업다각화에 열을 올리기 시작한 윤석금 회장은 경공업, 서비스업 중심의 기업에서 중화학공업(웅진에너지, 웅진케미칼), 건설(극동건설), 금융(서울저축은행)에 이르는 사업 다각화를 모색했다. 실제로 한때 웅진그룹은 매출 6조 원으로 재계 순위 30위에 이름을 올렸다.
다만, 이에 따라 윤석금 회장의 샐러리맨 신화가 몰락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인해 윤석금 회장이 손수 일궈낸 웅진그룹이 위기를 맞게 되며 지난 2012년 법정관리에 돌입했다. 특히 극동건설의 경우 한 차례의 법정관리를 이미 받았었는데, 이를 무리하게 추진하다가 지난 2015년 150억 원의 어음을 막지 못해 부도 처리했다.
그룹 해체의 목전까지 갔던 웅진그룹을 살리기 위해 윤석금 회장은 코웨이를 포함한 핵심 계열사를 줄줄이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웅진그룹의 지주회사인 웅진홀딩스와 계열사인 극동건설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시작으로 일부 출판 계열사를 제외하면 사실상 그룹이 해체된 상태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이어 당시 보도에 따르면 웅진그룹의 계열사였던 웅진식품은 사모펀드에, 웅진코웨이는 넷마블에, 웅진 패스 원은 KG그룹에, 웅진케미칼은 일본 도레이 첨단소재에 매각된 뒤 도레이 케미칼로 사명을 변경했으며, 그룹 해체의 주범으로 꼽혔던 극동건설은 중소 건설사인 세운 건설이 인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신속한 계열사 매각과 사재 출연을 통해 극동건설로 인해 만들어진 빚을 거의 갚을 수 있었다. 실제로 이 과정에서 배임 혐의로 윤석금 회장이 수사를 받게 됐으나 평소 투명경영을 강조하며 횡령이나 분식회계 등을 멀리했던 경영 스타일로 인해 그는 2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확정받았다.
이는 30대 오너 중에 유일하게 검찰 조사 때부터 형이 확정될 때까지 구속이 안 된 오너로 꼽혔다. 이와 더불어 30대 그룹 오너 중 유일하게 2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상고를 진행하여 대법원까지 가지 않은 오너로 자리 잡았다.
다만, 그룹 성장의 기반을 만든 코웨이를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지난 2019년 코웨이를 재인수했다가 3개월 만에 다시 매각하며 재차 그룹을 위기에 몰아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현재의 웅진그룹을 되고 재계에서는 ‘그룹’이 아닌 그룹의 모태가 됐던 ‘웅진씽크빅’ 중심의 단일기업으로 쪼그라들었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웅진그룹은 그룹의 모태인 웅진씽크빅을 통한 교육사업을 확대하고 미래 먹거리 찾기에 주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윤석금 회장의 두 아들인 장남 윤형덕 렉스필드(골프장) 부회장과 차남 윤새봄 ㈜웅진 대표(사장)는 경영에 활발하게 참여해 신사업 모색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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