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기차 충전소 풍경
가득 몰린 전기 화물차들
“이게 우리 잘못이라고?”
트위터에 ‘전기차 충전 절망편’이라는 제목의 사진 한 장이 올라와 화제가 됐다. 현대차그룹이 운영하는 전기차 충전소 이핏(E-pit)에 현대 포터 2 일렉트릭과 기아 봉고 3 EV 등 전기 화물차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뒤에 줄을 지어 대기 중인 전기차들도 모두 같은 전기 화물차들이었다.
이에 네티즌들은 “단거리 운송용으로 개발한 차를 고속도로에서 탈 생각을 했다는 것부터가 문제다”, “인프라 구축은 관심 없고 전기차 팔아치우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제조사 태도도 문제 있음”, ” 하는 일 없는 정부도 책임이 크다“와 같은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졸지에 ‘공공의 적’으로 찍혀버린 전기 화물차 오너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인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9만 대에 육박하는 판매량
승용차보다 보조금이 많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전기 화물차가 요즘 들어 흔해진 것 같다면 단지 기분 탓이 아니다. 업계에 따르면 전기 화물차들이 출시된 2019년부터 지난 2월까지 포터 2 일렉트릭은 5만 269대, 봉고 3 EV는 3만 6,512대가 판매되었다. 도합 9만 대에 육박하는 전기 화물차들이 도로 곳곳에 풀려 있는 셈이다.
이들이 단기간에 이렇게 높은 판매고를 기록할 수 있었던 데에는 전기 화물차 보급에 적극적인 정부의 지원이 컸다. 포터 2 일렉트릭이 출시되던 당시 받을 수 있었던 보조금은 서울시 기준 최대 2,700만 원에 달했으며 현재도 일반 전기 승용차보다 높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 기존 디젤 엔진보다 우수한 동력 성능을 발휘하며 차량 유지 관리까지 쉽고 저렴하니 수많은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충전소 자리 꿰차는 이유?
짧은 주행 가능 거리가 문제
하지만 전기 화물차에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두 가지 존재한다. 첫째는 익히 알려진 대로 너무나 짧은 주행 가능 거리다. 애초에 내연기관 모델을 기반으로 개발한 파생형 모델인 데다가 도심 내 단거리 운송에 목적을 둔 만큼 배터리 용량이 크지 않다. 포터 2 일렉트릭과 봉고 3 EV 모두 58.8kWh 배터리 팩을 얹어 최대 211km 주행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공차 상태 기준이며 화물을 만재한 상태에서는 150~180km, 배터리 효율이 크게 떨어지는 겨울철, 고속도로 주행 등의 상황에서는 100km를 겨우 넘기기도 한다.
충전 속도라도 빠르다면 이러한 단점을 일부 상쇄할 수 있겠지만 이 역시 절망적이다. 아이오닉 6의 경우 전기 화물차보다 훨씬 큰 배터리 팩을 얹었지만 배터리 잔량 10%에서 80%까지 18분이면 충전할 수 있다. 하지만 전기 화물차들은 47분을 기다려야 한다. 더구나 고속도로 휴게소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는 대부분 50kW급 구형 충전기라는 점도 문제다. 심지어 고장으로 사용할 수 없는 충전기가 많으며 실제 충전 속도는 30~40kW에 머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5만 대 보급 예정
더 많은 충전소가 필요해
이와 맞물려 발생하는 최악의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현실이 이렇지만 전기 화물차를 사려는 소비자들은 여전히 많다. 지난달 전기차 보조금 지급이 재개되자마자 포터 2 일렉트릭, 봉고 3 EV가 유명 아이돌 콘서트 티켓처럼 팔려나가기 시작했고 한 달도 안 돼 1만 대 가까이 판매된 것으로 확인된다. 정부는 올해 소형 전기 화물차 5만 대에 보조금을 지급할 계획인 만큼 단순 계산으로 따져도 연말 누적 13만 대에 달하는 전기 화물차들을 도로에서 마주하게 될 전망이다.
하지만 충전 인프라는 전기 화물차들을 비롯해 급격히 늘어나는 전기차 보급 물량을 따라잡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 정부와 제조사의 무대책으로 인해 발생한 혼란임에도 애꿎은 전기 화물차 오너들에게 비난의 화살이 꽂히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차주들을 비난할 일이 아니다”라며 “친환경차 보급만 생각하고 인프라 확보는 안중에도 없는 정부가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라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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