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왕’ 다원그룹 이금열 회장
회삿돈 1,000억 원 횡령해 징역 7년
약 14억 체납, 서울 신규 체납자 1위

조직폭력배 출신 재벌은 누아르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이지만, 실제로 무일푼으로 상경해 조직폭력배 생활을 하다 유명 건설 회사의 총수가 된 남자가 있다. ‘철거왕’으로 악명이 높은 다원그룹 회장 이금열 이야기다.
이금열은 1970년 전라남도 완도군 금일읍에서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섬에서 중학교까지 마치고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이금열은 20대에 서울로 상경하여 폭력 조직 ‘동대문호남파’에 잠시 몸담았다. 이후 1992년 지인의 소개로 적준에 취업해 수행 기사 역할을 하며 현장관리이사를 겸했다. 적준은 용역 깡패 업체인 입산개발의 인사들이 나와서 차린 회사였다. 그는 남들이 꺼리는 철거 현장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보이며 신임을 얻었다.

1980년대 당시에는 신도시가 계획되고,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정부 주체의 재개발이 본격적으로 진행 중이었다. 이 때문에 철거와 관련된 업무도 공무원들이 수행하는 일이 다수였다. 그러나 철거로 인해 반정부 시위로까지 이어지면서 1983년 합동재개발 방식을 도입하게 된다.
합동재개발 사업은 사업 지역 권리자인 가옥 및 토지의 소유자가 조합을 구성하여 법정 시행자의 자격을 갖추어 자율적으로 주택재개발을 시행하는 방식이다. 쉽게 말하자면 민간의 건설회사에 철거를 맡기는 방식이었는데, 해당 방식의 도입으로 불량주택 재개발 사업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했다.
철거 용역 업체였던 적준 또한 재개발 사업의 호황으로 전성기를 맞았다. 그들의 잔인하고 폭력적인 방식은 빠른 철거가 돈으로 연결되던 재개발 사업에서 통했기 때문이었다. 1994년부터는 철거 현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 한때 철거 현장 수주율이 80%에 달할 정도였다. 이 씨는 5년 만에 1997년 적준의 대표이사가 되어 사명을 현재의 ‘다원’으로 변경해 독립한다.

다원 또한 무자비하고 비인간적인 철거 방식으로 이름을 떨쳤다. 특히 1997년 전농동 재개발 당시 폐타이어 등을 태워 유독성 가스를 유발해 농성을 벌이는 조합민들을 강제로 밖으로 끌어내는, 이른바 ‘너구리 작전’으로 인해 주민 한 명이 투신한 사건이 유명했다.
1998년에는 이들의 처벌을 위한 공동대책 위원회가 세워질 정도였다. 이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다원건설 사법처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서 발표한 ‘다원건설(구 적준용역) 철거 범죄 보고서’에는 폭력 47건, 주거침입 55건, 성폭행·성추행 16건, 재산손괴 5건, 위협·협박 10건, 어린이 인권유린 9건, 살인 2건 등 다원건설이 1991년부터 7년간 저지른 범죄들이 상세히 나열되어 있다.
그러나 다원건설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 씨는 2000년대 골프장, 시행사, 시공사 등 사업 계열을 확장하면서 약 20개의 계열사를 거느렸다. 2007년에는 IMF로 상황이 어려워졌던 부실 건설사 (주)청구를 인수해 재벌의 반열에 올라섰다.

이후 이 씨는 2006년 11월부터 2013년 4월까지 회삿돈 884억 원과 아파트 허위 분양으로 대출받은 168억 원 등 총 1,052억여 원을 빼돌린 배임·횡령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2014년 2월 재판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이 과정에서 국회의원과 고위 공무원, 경찰 고위 간부 등에게 뇌물 3억 5,000만 원을 수수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당시 서울시의회 의장이 구속되기도 했다.
2021년 6월 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광주 동구 학동 철거 건물 붕괴 사고 때에는 다원그룹의 계열사 ‘다원이앤씨’가 이면계약을 맺고 철거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다시금 재조명됐다.

지난해 이 씨 또한 좋지 않은 소식으로 근황을 전했다. 그의 이름이 서울 신규 체납자 명단에 올랐기 때문이다.
지방세 14억 1,100만 원을 체납한 이금열은 2024년 서울시의 고액·상습 체납자 1위를 기록했다. 이는 당시 1인당 평균 체납액이던 5,600만 원을 훨씬 뛰어넘는 액수이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