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안마다 판단 달라져
계약 내용 구체성 갖춰야
사인, 도장 날인 필요

몇 년 전, 배우 A 씨가 조부로부터 효도를 조건으로 집과 땅 등의 재산을 증여받았다. 그러나 재산을 증여해 준 조부가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A 씨에게 소송을 제기하며 ‘효도 사기’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해당 사건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효도를 조건으로 하는 내용을 담은, 이른바 ‘효도계약서’ 작성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효도계약서는 부모가 생전에 자녀에게 매년 5회 이상 부모 집 방문, 입원비 지급 등 효도를 조건으로 재산을 물려줄 때 작성하는 계약서의 일종이다.

원래 민법에 있는 ‘조건부 증여’를 근거로 하는 양식이다. 조건부 증여는 본래 한번 증여가 완료된 재산은 되돌릴 수 없으나, 예외적으로 증여받는 사람이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계약을 해제할 수 있도록 규정한 법이다.
그러나 효도계약서를 작성한다고 해서 모두 유효한 것으로 인정되지는 않는다. 효도 계약으로 법적 분쟁을 한 사건 중에서도 효도 계약 자체가 인정되지 않아 패소한 사례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계약서를 작성하면 좋을까.

우선 법적 효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추상적인 표현을 지양해야 한다. 효도계약서에서 ‘증여의 조건’이 되는 것은 결국 효도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명시가 필요하다. 실제 2015년 아들 B에게 건물 지분과 아파트 등 부동산을 증여한 모친이 B의 의무 불이행을 이유로 소송을 걸었다가 ‘부모를 물질적·정신적으로 안락하게 여생을 즐길 수 있게 섬세한 부분까지 챙기고 온갖 배려를 다 한다’라는 조건 때문에 패소했다.
이는 재산을 무상으로 이전하되 일정한 부담을 지우는 ‘부담부 증여’의 성격을 가진 효도계약서의 성격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법원에서는 이 때문에 상대가 해야 하는 급부(부담)로서의 요건인 적법성, 가능성, 확실성을 갖추지 못했기에 부담부 증여가 될 수 없다고 봤다.

또한, 계약 날짜와 계약 당사자들의 이름, 사인이나 도장 날인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좀 더 확실하게 하고 싶다면 공증을 받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효도계약서는 증여를 전제로 하므로 자녀에게 증여한 재산의 가액을 넘어선 요구를 할 수는 없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실제 지난해 계약서를 작성했지만, ‘효도계약서’상 심부름 이행 의무를 지키지 않은 손자들을 상대로 증여 재산 회수를 요구한 할아버지와 손자 간 소송전에서 법원이 손자들 손을 들어줬다.
손자 측에서 효도계약서 작성 일자와 등기 원인의 증여 일자가 다른 점, 효도계약서에 친권자 서명·날인이 없는 점 등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점 등을 적극적으로 증명해 승소를 끌어냈다.

다만 효도계약서를 위와 같이 작성하였다고 해서 안심하기는 이르다. 효도계약서는 자식에게 법률상 의무를 부과한다는 측면에서 어느 정도 효력이 있을 수 있으나, 그 본질상 채권(債權)계약에 불과하여 조건 불이행 시 재산 반환과 관련된 걸림돌을 완벽하게 제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현행법상 증여받은 사람이 증여한 사람에게 범죄행위를 하거나 부양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증여를 해제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 증여를 해제하려면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때로부터 6개월 안에 해야 하고, 해제하더라도 이미 증여한 재산은 소급 적용을 받지 않아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 특히 효도계약서는 소유권이 완전히 자녀에게 넘어가기 때문에 이를 해제하기 위해서는 증여 무효 확인 소송 등 별도의 민사소송이 필요하다.
한 전문가는 효도 계약서에 대해 “효를 계약서로 정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물려줄 재산이 많거나 생계 곤란 등 불가피한 상황에 대한 우려가 앞선다면 쓸 수 있다”라며 “유언대용신탁과 같은 제도를 활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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