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치혁 前 고합그룹 회장
국내 워크아웃 1호 기업
분식회계·불법 대출 혐의

1997년 IMF가 발발하면서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은 사상 초유의 위기에 직면했다. 당시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던 일부 기업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 중 한때 재계 21위에 올랐던 고합그룹은 현재 아는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로 몰락했다. 당초 석유화학, 화합 섬유를 바탕으로 약 31년간 위기와 성장을 반복하며 재계에 안착했던 고합그룹은 왜 몰락했을까?
1945년 13세의 어린 나이에 가족과 함께 월남해 1958년 사업에 뛰어든 장치혁 창업주는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 견직기 5대를 돌리는 작은 공장을 차렸다. 그러나 공장 운영이 불가능할 정도로 번진 화재로 인해 해당 공장을 접어야 했다.

다만, 장치혁 창업주는 화재에 굴하지 않고 자수정 채굴 사업으로 눈을 돌려 돈을 모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1,000만 원의 자본금을 모은 그는 고합그룹의 모태인 고려 합섬을 김종하 씨와 함께 설립했다.
재계에 따르면 1968년 말 고려 합섬은 하루 2.5톤의 폴리프로필렌 파이버를 생산하는 업체로 자리 잡았고, 1972년에는 나일론 생산시설도 갖추게 되며 업계에 두각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진다.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1976년 고합그룹은 나일론 종합 플랜트를 최초로 국산화하며 일본산 나일론 제품을 몰아내 사세를 키웠다. 이후 1970년대에 개발한 해피론의 인기가 더해지며 설립한 (주)해피론을 1982년 ‘고합상사 주식회사’로 사명을 바꾸고 자본금을 20억 원으로 늘리게 됐다. 자본금이 늘어남에 따라 고합그룹의 사세 확장 역시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지난 1981년 1억 6,600만 달러의 수출 목표로 잡은 고합그룹은 이듬해 2억 8,800만 달러로 늘릴 정도로 성장했다. 이에 장치혁 회장은 화섬 원료 공장을 준공하며 석유화학 부문을 떼어내 고려종합화학을 설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과정에서 대규모 투자가 진행되며 자금난에 시달리기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시기 울산에 600억 원을 투자해 TPA 공장을 건설한 것과 불황, 유가 하락 등이 겹치며 부도 위기를 직면했다.
당시 주거래은행인 한일은행은 고려종합화학을 매각하라고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자금난을 이겨내고 화섬업 호황기에 접어들며 고합그룹은 회사를 지킬 수 있었다.
이후 장치혁 회장은 1991년 전자, 통시, 플라스틱 자재 유통 등으로 사업다각화를 모색했다. 이에 따라 1994년 이스턴 전자통신을 인수해 주문형비디오, 초고속통신망 관련기기 생산 및 정보통신 서비스 등의 사업에 진출했고, 자동차 내장용 부직포 공장을 건설해 이탈리아, 일본 기업과 제휴해 유통업에 진출했다.

장치혁 창업주의 노력에 따라 고합그룹은 1990년 그룹 매출 7,500억 원을 달성했고, 1991년에는 매출 1조 2,000억 원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다만, 1992년 이후 장치혁 창업주가 대북 사업에 손을 데며 사세가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이는 장치혁 회장이 대북사업에 손을 댄 시기 IMF가 터지며 외환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이에 재무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한 고합그룹은 1998년 7월 워크아웃 기업으로 결정되며 부채 규모 재조정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파악됐다.
재계에 따르면 당시 부채 규모는 3조 5,000억 원, 부채비율은 434%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중 부실 채무는 1조 2,000억 원을 기록했다. 이에 고합그룹은 2,430억 원을 협조융자로 제공받고, 13개 계열사를 (주)고합으로 합병하는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덧붙여 3,400억 원의 유가증권과 부동산을 매각하며 고합을 살리려 노력했지만 손쓸 수 없이 몰락하는 회사를 지켜봐야 했다.

이후 지난 2001년 고합그룹의 경영 일선에서 장치혁 창업주가 물러난 뒤 (주)고합은 2004년 청산 후 소멸했다. 이에 따라 고합물산의 의류사업부는 신세계인터내셔날에 인수됐으며, 나머지 사업 부문과 자회사는 대부분 청산·폐업 수순을 밟았다.
한편, 장치혁 창업주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후인 지난 2005년 분식회계와 6,794억 원의 불법 대출 혐의, 회삿돈 7억 5,000만 원을 유용하고 계열사 자금 30억 원을 선교재단에 출연한 혐의 등으로 검찰에 기소된 바 있다.
당시 재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는 등 대부분의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으며,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주)고합에 33억 5,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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