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균 게이트’ 녹취 논란
재계 임원 차량 블랙박스
자동차 업계 사생활 차단
정치권을 흔들고 있는, 이른바 ‘명태균 게이트’를 촉발한 통화 녹취의 출처 중 한 곳이 명태균 씨의 운전기사였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재계에서 차랑 보안이 화두가 되고 있다. 특히 삼성과 SK는 현재 임원 차량에 블랙박스가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4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과 SK는 임원 차량에 블랙박스를 부착하지 않고 운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사업장 등 민감 시설의 촬영을 차단한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차량 내 통화를 비롯해 운전기사와의 대화가 녹음될 수 있다는 점도 주된 배경으로 꼽힌다.
차량 블랙박스 제거에 대해 대기업 임원 A 씨는 “비슷한 이유로 하이패스도 떼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의가 있었다”라면서도 “톨게이트 통행 과정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그것까지는 하지 않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차량은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나 임원을 비롯해 국회의원 등 정·재계 주요 인사가 이동하면서 중요한 내용의 통화를 많이 하는 ‘이동형 집무실’이란 성격도 갖는다. 동시에 최근 IT기술의 발달로 누군가 마음만 먹으면 좁은 폐쇄 공간에서 녹음 등을 통해 기록마저 쉽게 할 수 있는 만큼 차량은 민감한 공간이기도 하다.
이에 정·재계는 차량의 블랙박스를 없애는 등 자체 보안을 강화하고 있다. 이어 자동차 업체들은 뒷좌석 대화 내용이 앞자리로 전달되지 않게 하는 등의 기술을 선보이며 대응에 나서고 있다.
운전기사 보안도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수행 운전기사들이 차량에서 각종 대화를 비롯해 통화 내용 등을 녹음해 폭로한 사례가 실제로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2017·2018년 각각 대기업 CEO와 그 배우자의 운전기사가 폭언을 당했다며 녹취를 공개하여 해당 기업을 향한 소비자 불매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어 2021년엔 수행 운전기사가 한 의류업체 임원의 사적 심부름 등에 대한 대화 내용을 온라인커뮤니티에 폭로하면서 주목받기도 했다.
또한 지난 2022년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사건’도 돈봉투를 건넨 사업가의 운전기사 겸 수행 비서가 차량 블랙박스에 녹음된 통화 내용을 언론사에 제보하면서 검찰 수사가 시작되는 등 차량에서 녹음한 내용이 사회에 고발된 사례가 여럿 있다.
이러한 이유로 실제 대기업 임원 중에서 운전기사 없이 근무하는 이들도 있다고 전해진다. 일부 대기업은 임원들의 전담 운전기사 활용 여부를 본인 판단에 맡기고 있다. 기업은 임원이 운전기사를 채용하지 않으면, 대리기사 사용 등의 명목으로 차량 운행 비용을 지원한다.
이에 대해 한 대기업 임원 B 씨는 “임원 중에는 누군가 자신의 대화를 듣고 있는 게 싫다는 이유로 전담 기사 없이 스스로 운전하고, 필요할 때마다 대리기사를 부르는 이들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재계에 따르면 대기업 임원들은 차량 내 통화 역시 극도로 조심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운전기사를 의식해 민감한 내용을 아예 말하지 않거나, 작은 소리로 숨죽여 말하기도 하며 상대방과 서로만 이해할 수 있는 ‘그때 그 사건’ 등으로 돌려 말하는 식을 택한다고 한다.
한편, 차량 보안 우려가 정·재계를 덮치자, 자동차 업계에서는 뒷좌석 사생활을 지키기 위한 기술 개발에 착수하고 있다. 특히 올해 7월 렉서스가 국내에 출시한 한 고급 차량(LM 500h)은 앞좌석과 뒷좌석을 격벽으로 완전히 분리했다. 격벽에는 흡음재가 적용되어 있어, 벽 윗부분에 달린 유리를 올리면 앞뒤 좌석 간 대화가 차단된다.
현대차 역시 좌석별로 방음 시설이 구비된 것과 같은 효과를 내며 뒷좌석 대화가 앞쪽으로 들리지 않도록 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 한 관계자는 “추가 기술 개발을 통하여 양산차에 적용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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