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 ‘동물 사랑’
멸종 위기 진돗개 구입해
진돗개 보존·삼성 안내견 학교
지난달 25일 故 삼성 이건희 선대 회장이 별세한 지 4주기를 맞은 가운데 과거 그가 국내 토종견인 진돗개의 보존과 품종 등록에 힘쓴 이유가 재조명되고 있다.
이는 최근 위기를 맞았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는 삼성그룹이 고(故) 이건희 선대 회장 4주기와 이재용 회장의 취임 2주년에도 별다른 메시지를 내놓지 않아 과거 이건희의 위기 극복 타개책과 함께 그가 선보였던 사회적 행보가 재조명되는 것으로 풀이된다.
당초 이건희 회장의 타개 이후 삼성그룹은 의료, 문화 등 사회책임을 강조한 철학을 기리는 데 집중하는 행보를 보여왔다. 이건희 회장은 앞서 의료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지는 행보를 보인 것과 더불어 지난 2005년 한국 천연기념물인 진돗개를 세계 3대 견종협회 중 하나인 영국 견종협회 케널클럽에 정식 품종으로 등록하는 데 이바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에 따르면 이건희 선대 회장은 세계 각국의 품종견들을 기른 경험에 비추어 국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진돗개의 충성심에 특히 주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당시 진돗개는 확실한 순종이 없다는 이유로 우수성이 세계에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덧붙여 원산지가 한국이라는 것도 인정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이 선대 회장은 1960년대 말 진도를 찾아 거의 멸종 단계였던 진돗개 30마리를 직접 구입해 보존 작업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건희 회장은 자선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를 통해 “진도에 가서 사흘을 머물며 장터에도 가고 또 순종이 있다는 이 집 저 집을 찾아 30마리를 사 왔다. 그리고 사육사와 하루 종일 같이 연구하고, 외국의 전문가를 수소문해서 조언을 받아 가며 순종을 만들어 내려고 애썼다”라고 회상한 바 있다.
10년여 간의 노력 끝에 순종 진돗개 한 쌍을 만들어낸 이건희 회장은 이후 진돗개 300마리를 키우며 순종률을 80%까지 끌어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즉, 확실한 순종이 없던 진돗개에 대한 시각을 뒤집을 계기를 만든 것이다.
이어 지난 1979년 일본에서 열린 ‘세계 견종 종합 전시대회’에 진돗개 암수 한 쌍을 직접 데려가 선보인 이건희 회장은 이를 계기로 1982년 ‘세계 견종협회’에 한국을 원산지로 등록할 수 있었다. 또한, 지난 2005년에는 세계적 권위를 가지는 영국 견종협회인 ‘켄넬클럽’에 진돗개를 정식 품종으로 등록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이건희 회장은 자신의 에세이에 “나는 아무리 취미생활이라도 즐기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깊이 연구해서 자기의 특기로 만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라며 “취미를 통해 남을 도와줄 수 있다면 더욱 좋은 일이다”라고 후일담을 전했다.
이건희 회장의 동물 사랑에서 비롯된 사회적 행보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시각장애인 안내견 양성기관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를 설립한 것이다. 지난 1993년 이건희 회장의 뜻에 따라 설립된 해당 학교는 현재 기업이 운영하는 세계 유일의 안내견학교로 알려졌다.
여기에 삼성그룹의 안내견 학교는 일반인 대상으로 한 시각장애 체험 행사 등 장애인과 안내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 노력도 병행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공로를 인정받은 이건희 회장은 지난 2002년 세계 안내견 협회(IGDF)로부터 공로상을 받은 바 있다.
업계에서는 이건희 회장의 이러한 행보를 두고 “이건희 회장이 무엇보다 개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의 행보는 한국의 국가 이미지 개선,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 확산, 현대인의 정서 순화, 애견 문화 저변 확대를 통한 관련 산업 창출 등을 위한 것이었다”라고 평가했다.
특히 이건희 회장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에 세계인들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보신탕’ 문제가 연일 논란이 됐을 때 앞장서 이를 해결하기도 했다. 당시 성공적인 서울올림픽 운영 이후에도 일부 유럽 언론은 한국을 ‘개를 잡아먹는 야만국’으로 소개하는 등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계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은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할 때 국가 이미지 실추로 이어져 한국 상품 불매운동으로 연결되면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에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이건희 회장은 영국 동물보호협회 회원들을 서울로 초청해 집에서 개를 기르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고, 애완견 연구센터 견학을 통해 한국의 우수한 ‘애견 문화’ 수준을 보여주며 논란을 잠재웠다. 이 외에도 삼성은 지난 2008년 일본에 청각 도우미견 육성센터를 설립하는 등 동물 사랑을 기반으로 한 사회적 행보를 이어나갔다.
한편, 선대 회장의 경영 방식과 그가 사회에 보였던 행보가 재조명되고 있다는 것은 삼성이 사상 초유의 위기를 맞았다는 현시점과 맞물리며 삼성에 이건희식 쇄신안에 대한 요구가 빗발치고 있는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앞서 지난 1993년 이건희 회장은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통해 신경영을 선언해 삼성의 위기를 극복한 바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이재용 회장이 선대 회장의 행보를 이어받아 한국 산업계 전반에 돌고 있는 위기감을 극복해 나갈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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