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년간 고대역폭메모리(HBM) 핵심 장비 협력을 이어온 SK하이닉스와 한미반도체 간에 균열이 생겼다. 장비 공급 파트너였던 한미반도체가 최근 SK하이닉스에 “우리 직원 SK에서 빼라”며 강경 대응에 나선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한미반도체는 최근 SK하이닉스 이천공장에 파견한 고객서비스(CS) 엔지니어 수십 명을 전원 철수시켰고, 동시에 TC본더 가격을 28% 인상하겠다고 통보했다. TC본더는 HBM 제조에서 D램 칩을 쌓아 붙이는 데 사용되는 핵심 장비로, 품질과 수율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 같은 조치는 SK하이닉스가 최근 한화세미텍의 TC본더를 약 420억 원 규모로 도입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된다. 한화세미텍은 현재 TC본더 관련 특허 침해 혐의로 한미반도체와 소송 중인 업체다. SK하이닉스가 이 같은 상황에서 경쟁사의 제품을 도입하자, 독점 공급 관계였던 한미반도체가 강경한 대응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SK하이닉스 측은 특정 장비사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복수 공급망 전략’의 일환이었다는 입장이다. 생산 차질 방지와 가격 협상력 제고, 기술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공급사 다변화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화세미텍은 자체 기술인 ‘3D 스택’ 등을 기반으로 시장 점유율 확대를 꾀하고 있다.

한미반도체 역시 최근 마이크론 등 해외 고객사 납품을 확대하면서 시장 대응 여력을 확보한 상태다. 업계에 따르면 한미반도체의 올해 마이크론향 매출은 지난해(약 1,110억 원) 대비 3~4배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번 갈등이 장기화할 경우, HBM 품질 관리와 장비 유지보수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SK하이닉스가 TC본더를 다수 운영 중인 만큼, 한미반도체의 CS 인력 철수는 장비 점검 및 긴급 대응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양측이 극적인 합의에 이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업계 관계자는 “양사가 함께 HBM 시장을 선도해 온 만큼, 갈등이 장기화하면 상호 손해가 크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을 것”이라며 “가격 인상 협상 결과가 주요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TC본더는 고성능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 확대에 따라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장비다. HBM 시장이 2024년 기준 50조 원 규모로 성장하면서, 관련 장비 업체 간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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