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계 구도 급변
지분 헐값 매각
새 주주는 상폐 위기

배탈약 ‘정로환’과 염색약 ‘세븐에이트’로 잘 알려진 동성제약의 오너 경영이 갑작스레 막을 내릴 가능성이 제기됐다. 창립 70년 가까운 이 회사의 이양구 회장이 최근 보유 지분을 외부 업체에 매각하면서 최대 주주가 변경된 것이다. 특히 이 회장의 조카이자 현 대표인 나원균 씨가 취임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회사와 아무런 협의 없이 이뤄진 매각 결정이라 파장이 크다.
회사에 따르면 이 회장은 지난 21일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동성제약 지분 14% 가량(368만 여 주)을 마케팅 회사 ‘브랜드리팩터링’에 120억 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당시 주가인 3,820원보다 약 15% 낮은 3,256원 수준으로, 경영권 프리미엄도 반영되지 않은 헐값 매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동성제약은 23일 이를 공시하며 최대 주주가 변경된다고 밝혔다.

이번 거래는 회사 내부와의 사전 논의 없이 이뤄졌다. 동성제약 측은 “이양구 회장의 지분 매각은 전적으로 개인적 판단에 따른 것이며, 회사와 협의된 바 없다”며 “구체적인 매각 배경은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3세 경영인이 회사를 맡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분을 외부에 넘긴 결정이어서 투자자들의 혼란이 크다.
새로운 최대 주주가 된 브랜드리팩터링은 코스닥 상장사 셀레스트라의 백서현 대표가 이끄는 비상장 마케팅 회사다. 셀레스트라는 암 진단 의료기기 등을 판매하는 업체로, 최근 외부 감사인으로부터 ‘의견 거절’을 받아 상장폐지 절차에 들어간 상태다. 이로 인해 브랜드리팩터링의 경영 능력이나 재무적 안정성에 대한 의문도 커지고 있다.

백서현 대표는 셀레스트라의 창업자가 아니다. 기존 창업진은 지난해 회사를 개인(정준호)이 주 자금을 댄 제노투자조합1호에 매각했고, 이후 백 대표는 해당 투자조합의 결정에 따라 대표직에 올랐다. 셀레스트라는 지난해 외부 감사에서 ‘계속기업으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을 받아 상장폐지 대상으로 지정됐다.
이번 지분 매각은 단순 투자 성격이라기보다는 경영권 이전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동성제약은 브랜드리팩터링 측이 지정한 인사가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 이사로 선임된 이후, 이양구 회장이 보유한 잔여 지분 약 86만 5,000주도 넘기게 된다고 밝혔다.

이 회장이 갑작스럽게 지분을 매각한 배경도 투자자 사이에서 관심을 모은다.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 등 일반적인 방식 대신, 시장 가격보다 낮은 수준에서 개별 계약으로 매각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동성제약은 현재 이양구 회장의 조카인 나원균 대표가 이끌고 있다. 나 대표는 지난 2019년 동성제약 입사 후 국제전략실장을 맡아 2019년 42억 원에서 2023년 200억 원 상당으로 글로벌 매출을 확대한 바 있다. 지난해 10월 대표이사로 선임되며 오너 3세 체제를 본격화했지만, 이번 매각으로 인해 그의 경영 안정성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나 대표가 보유한 지분은 4.1%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당초 보유 지분은 1%에서 지난 2월 이양구 회장으로부터 주식 2.9%를 장외매수(1주당 4,600원)한 것이다. 일각에선 이번 지분 매각으로 인해 경영권 분쟁이 불가피해졌다고 보고 있다. 임시 주총에서도 나 대표 측과 브랜드리팩토링이 표 대결을 벌일 거라 관측된다.

브랜드리팩터링과 나 대표는 경영적으로 연관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관계자는 “브랜드리팩터링은 현재 회사를 이끌고 있는 나 대표와 전혀 연결이 없는 회사”라고 밝혔다.
동성제약은 오랫동안 가족 중심 경영을 이어온 전통 있는 제약사다. 고(故) 이선균 창업주에 이어 아들 이양구 회장이 회사를 이끌어왔고, 최근에는 외손자인 나원균 대표가 경영을 맡아 3세 승계를 시작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회장이 갑자기 지분을 외부에 넘기면서, 회사의 정체성과 경영 방향성 모두가 흔들리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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